동물원살롱

‘마마’가 창경원에서 온 불곰이라는 사실을 정말 모르고 있었다. 창경원에서 1984년도에 이곳으로 왔으니 서울대공원에서만도 36년을 살았다. ‘마마’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던 것은 그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왔던 탓이기도 하다. ‘마마’는 코끼리 ‘자이언트’라든지, 할아버지 고릴라 ‘고리롱’처럼 창경원 출신의 스타 동물 반열에 한 번도 끼지 못했다. 신문이나 TV에조차도 제대로 한 번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 무관심 속에 시나브로 세월이 흘러 조용히 늙어간 세월이 36년이나 지난 것이다.
작년부터는 움직임이 둔해져서 잘 꾸며진 넓은 방사장을 젊은 후배 곰들에게 양보하고 뒷방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래도 잘 먹고 건강했는데 최근 며칠 전부터 영 힘이 없어 보이고 주저앉는 시간이 많다는 보고를 받았다. 어떤 상태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 즉시 곰사로 올라갔다. 한창때의 위용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윤기 없는 털 빛깔도 그렇거니와 잠시 고개 돌렸을 때 마주친 눈매가 자신감도 호기심도 없어 보였다. 담당 사육사에게 나이는 몇 살인지, 사료는 잘 먹는지, 움직임이나 배변 상태 등 뻔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마마’가 창경원에서 넘어왔단다. 창경원에서 서울대공원으로 이사 온 포유류들은 다 죽고 없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개체별 대장을 확인해보니 1984년도에 서울대공원 개장할 때 넘어온 동물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대체 몇 살이지? 1978년생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42살이 넘는 노령이다.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적어도 아흔 살 가까이 이른 나이다. 이런 할머니 곰의 존재를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니! 갑자기 곰한테 한 대 얻어맞은 듯하고 미안한 마음도 생겼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아픈 데가 여기저기 생기듯이 야생동물도 마찬가지다. 담당 수의사로부터 회복하기 힘드니 안락사를 고려해야 한다는 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포기하기는 싫었다. 그동안의 무관심과 홀대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동했는지 모르지만, 긴급히 ‘동물복지위원회’를 열어 그동안의 경과와 진료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니 ‘마마’가 처음으로 이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작년 10월부터였다. 사육사의 관찰에 따르면 누워 있는 경우가 많으며 행동이 굼뜨고 보행 자세도 부자연스럽다고 했다. 진료팀에서 전신마취 후 방사선 촬영, 혈액검사 등 진단을 위해 여러 검사를 했는데 노령으로 인한 보행장애라고 했다. 수의학적 진단용어로 표현하자면 ‘퇴행성 관절염에 의한 양후지 파행’.
이럴 때 가장 힘든 사람은 담당 사육사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매일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큰 고통이다. 동물복지위원회를 한 차례 더 열었다. 주사제 투약 후에 약간 효과를 보는 듯했으나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안락사를 시키고 부검결과를 보니 진단했던 대로 양쪽 무릎관절염이 심했으며, 난소에 종양까지 관찰되었다. 안락사 결정을 잘했다고는 하지만 얼마나 통증이 심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오는 세상은 천국에서 누리거라!”
동물원 위쪽 한곳에 동물위령비가 세워져 있는데 그 비에 새겨진 위령문의 마지막 한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