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전통춤에 근거한 버라이어티한 창작무용극, 서울시무용단의 『웨딩보감』(10월22~24일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서울시무용단(예술감독 정혜진)은 2018년부터 매년 가을에 우리 전통춤에 있어 본질과 성향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하여 소개하는 ‘동무동락(同舞同樂)’을 기획하고 있다. 첫 해에는 배정혜, 국수호, 임이조에게 전수받은 춤사위를 무대 위에 올렸으며, 작년에는 최현의 삶과 춤을 망라해놓은 『허행초』를 선보였다. 올해는 동무동락 시즌3으로서 10월 22일부터 2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웨딩보감』을 올렸다.
보통 전통춤이나 전통춤을 재구성한 춤을 무대화하는 기획공연들은 모음집 형식으로 전개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동무동락’에서는 일련의 스토리라인을 가진 작품으로 완성시켜 놓곤 하였다. 실제로, 작년 『허행초』에서는 최현의 춤들을 극적 전개에 아울렀으며, 올해 『웨딩보감』에서는 스토리라인을 한층 강화하여 전통춤에 기반한 창작무용극을 내놓았다.
『웨딩보감』에서 사용하는 전통춤은 궁중무와 민속무를 넘나들면서 줄다리기 민속놀이, 화관무, 태평무, 버나놀이, 장구춤, 진쇠춤, 강강술래, 한량무, 살풀이춤, 고풀이춤, 탈춤 그리고 북춤(삼고무, 오고무, 팔고무)까지 아우른다. 잘 알려진 한국 전통춤은 크고 작은 변형을 거쳐 다양한 형태로 펼쳐졌다. 강강술래처럼 대열과 장단이 특징적이거나 장구춤처럼 악기나 춤사위가 특징적인 경우는 누가 보더라도 선명하게 전통춤을 인식할 수 있다. 한편 변형된 춤과 음악이 장면 속에 융해된 경우는 일반 관객이 정확히 어떤 춤인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춤조차 원형이 우리의 전통에 근거함으로 본질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전통춤을 재구성한 이러한 춤들은 일련의 스토리라인을 갖춘 창작무용극으로 완성되었다. 황혼기에 접어든 부부가 그들의 첫 만남과 사랑, 결혼과 가족 이루기, 현실적 문제와 중견의 갈등, 그리고 노년의 삶을 회상하는 전개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오늘보감, 연애보감, 현실보감, 양육보감, 인생보감, 웨딩보감이라는 여섯 개의 큰 장 속에서 세부적인 춤 장면들로 표현된다. 대단히 현실적이면서도 어느 시대에서도 소통되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전통춤을 재구성한 춤들과 함께, 전통음악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융합한 퓨전음악, 손가락 인형에서 어린이만한 인형까지 사용한 인형극, 창호와 노리개와 초롱을 미니멀하게 처리한 무대세트, 가면·부채·장삼·수건·꽃·난·나비 등 갖가지 소품들이 어우러져 다양한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제공한다. 여러 춤들과 함께 퓨전음악, 인형극, 무대세트, 소품들이 한데 어우러진 90분간의 버라이어티는 이따금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남녀노소 다양한 일반 관객층을 아우를 수 있을 만한 대중적 수용력을 갖추고 있다.
최근 서울시무용단의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는 단원들의 기량 향상이다. 『웨딩보감』에서도 무용수들은 각 역할에 충실하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특히, 피날래로 펼쳐진 장구춤은 놀라움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적게는 여러 명에서 많게는 십여 명의 무용수들이 타악기를 두드리는 소리를 거의 한음으로 맞추는 것은 오랜 기간 집중력을 가지고 연습을 거듭해야지만 이루어낼 수 있는 성과다. 이와 더불어 무용수들 사이에 편차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젊은 에너지가 만연한 무용단으로 쇄신되었다는 점에서 서울시무용단이 서울을 대표하는 직업무용단체로서의 위상을 되찾아감을 확인할 수 있다.

* 우여곡절 끝에 개최된 「34회 한국무용제전」(10월23~31일 서강대메리홀)
올해 한국춤협회의 한국무용제전(예술감독 이미영)은 우여곡절 끝에 개최되었다. 원래 4월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10월 서강대학교 메리홀로 변경되었다가, 8월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상승하여 집합금지 명령이 떨어짐에 따라 상황이 급속히 냉각되었다. 무용가들이 함께 모여 연습을 할 수 없게 되자 아예 작품을 준비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특히 대극장 무대에 서는 무용단체의 경우 비교적 대작을 완성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무용제전」 측에서는 부득이하게 취소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0월 들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낮아짐에 따라 개막공연을 제외한 대극장 프로그램을 없애고 소극장 공연 위주로 개최를 결정하여 10월23~31일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과 소극장에서 펼쳐지기에 이르렀다.
유일한 대극장 공연이었던 23일 개막공연은 ‘화해와 치유의 춤 처용무·마스크댄스(Mask Dance)’라는 주제로 국가무형문화재 처용무보존회의 『처용무』와 윤수미무용단의 『2020 처용, 핏물어린』을 선보였으며, 그 작품들 전에 조택원 안무와 조흥동 실연의 『신로심불로』를 영상으로 소개하였다.
우선 원전이 되는 『처용무』는 신라 49대 헌강왕 때 처용랑 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춤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중무다. 음양오행설에 근거한 청, 홍, 황, 흑, 백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다섯 명의 무용수들이 커다란 가면을 쓰고 나와 굵직한 선형의 정대한 움직임을 위풍당당한 기풍으로 추는 춤이다. 보유자 김중섭과 이수자 송경남, 이재영, 최유진, 이지은은 국가무형문화재 제39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처용무』를 섬세하고 기교적이기보다는 큼지막하고 맛깔스럽게 추어냈다.
처용무와 처용설화를 재구성한 윤수미무용단의 『2020 처용, 핏물어린』은 「26회 한국무용제전」에 초청된 바 있는 60분짜리 작품의 콤팩트한 버전이다. 처용의 내면의 서사를 다루면서 이방인으로서 다름과 차별, 외로움과 공허함, 분노와 좌절 등을 복합적으로 그린다. 처용의 내면의 복잡미묘한 갈등을 오래도록 진지하게 다루고 있지만, 정작 인상적인 부분은 다섯 명의 여성무용수들이 (오방)처용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임팩트있게 재구성한 춤에 있었다.
두 개의 처용무에 앞서 영상으로 제시된 『신로심불로』는 1949년 조택원에 의해 초연된 원전을 2007년 조흥동이 복원 및 재현한 공연 실황이다. 노인의 인생무상을 표현한 춤으로 조흥동 특유의 유려하고 우아한 남성춤이 두드러진다. 보통 남성춤하면 동작을 크게 하고 도약을 높이 하는 등 역동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흥동의 남성춤은 섬세하고 정교한 디딤과 어름을 통해 우리네 선비의 풍류를 표현한다.
이후 10월24일부터 26일까지는 이제껏 참가작들의 영상을 추려서 온라인으로 송출하며, 10월27일부터 31일까지는 12명 무용가의 작품들로 소극장에서 경연을 펼쳤다. 예년에 비해 규모 면에서 확연히 작아졌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고려해야 하며 우여곡절 끝에 34회째 「한국무용제전」을 개최한 것 자체가 하나의 성과로 여겨져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차년도에는 여러 변수를 고려하여 몇 가지 기획안을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