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스크랩북

일전(日前) 한국일보(2월 3일~4일 刊)에 게재된 趙東華 씨의 무궁화에 대한 논의를 읽고 동감(同感)인 입장에서, 또 이 문제는 해방 직후부터 필자가 직접 취급한 일도 있었던 관계로 재래(在來)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을 몇 마디 적기로 하겠다.
해방이 되었을 때 정계 경제계 학계의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긴급히 처리하여야 할 문제가 山처럼 쌓였던 것처럼 생물학계(生物學界)에서도 많은 문제가 있는 가운데 우리말 학술어문제(學術語問題), 동식물(動植物)의 우리 말 이름의 재정 등의 긴급을 요하는 문제와 아울러 국화(國花)를 어떤 식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무궁화가 과연 國花로서 국화성(國花性) 또는 식물학적인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불연(不然)이면 어떤 것을 國花로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문제가 역시 여러 차례 토의 대상으로 된 것도 사실이고 또 구체적인 식물들이 등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타면(他面)에 있어서 아직 국토(國土)도 통일되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도 있었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일제(日帝)에 짓밟혔던 민족적 감정이 겨우 자기 것을 찾아 태극기(太極旗)를 보고 그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고 무궁화를 보고 민족의식(民族意識)을 더욱 새로이 하고 애국가(愛國歌)나 심지어는 홍난파(洪蘭坡)씨의 「울밑에선 봉선화야…」만 들어도 무언지 모르게 피가 뛰는 민족의식을 폭포수(瀑布水)와도 같이 내뿜을 때 비록 ‘무궁화’가 국화(國花)로서 부적당하다고 해서 다른 꽃으로 바꾼다는 일이 과연 그 당시의 감정으로 보아 현명한 처사일 수는 없었던 것 등의 여러 가지 이유에서 그 당시로는 시기상조(時機尙早)인 감(惑)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로 묻어둔 것이 오늘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벌써 해방도 10년이 지났고 모든 것이 과도적인 형태를 벗어나 재검토를 받아야 할 때도 온 것 같고 때마침 조동화(趙東華)씨의 논의(議論)이 나왔으니 이때에 이것을 공론(公論)에 붙여 재검토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무궁화가 왜 국화(國花)로서 적당하지 못한가 하는 것은 대체로 씨(氏)의 논지(論旨)에 어긋남이 없으며 실제에 식물학적으로도 정확한 것이고 또 해방 당초부터 우리들 사이에 벌어진 논지(論旨)와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 식물학도(植物學徒)의 공의(公議)는 무궁화가 국화식물(國花植物)로서는 부적당한 것으로 되어 있다.
우선 국화식물(國花植物)로서의 전제조건은 많겠으나 그중 중요한 것을 들어 보면 ①국토전역(國土全域)에 분포될 것이 요구되고 ②될 수만 있으면 한국원산종(韓國原産種)인 것으로 민족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③민족(民族)과 더불어 역사적인 친교(親交)가 있어야 하며 ④이름이 고울 것은 물론 꽃이 또 그것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녀야 할 것 등 여러가지의 조건이 구비 될 것이 필요하다. 이제 이런저런 점을 염두에 두고 학적기반(學的基盤) 위에서 지금까지의 국화(國花)인 무궁화에 대치될 만하다고 믿어지는 식물을 비교 고찰하여 공론(公論)에 붙이고자 하는 바이다.
그러면 위에 말한 조건에 비추어 볼 때 무궁화는 그 어느 하나의 조건도 구비치 못한 식물이다. 그러면 어떤 식물이 여기에 가장 적합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옛날부터 우리 민족과 관계 깊었다는 식물은 사대사상
(事大思想)에서 오는 기호인지는 모르나 대개 중국(中國)에서 물려받은 사군자(四君子, 매란국죽(梅蘭國竹))나 그와 비슷한 목단련(牧丹蓮)따위의 준군자식(準君子式)인 식물들이다. 그러나 이런 식물들은 어느 것이나 한국적(韓國的)인 풍토(風土)밑에서 볼 때 국화(國花)로서의 자격은 없는 것이다. 즉 무궁화만 보더라도 한국의 풍토로서 볼 때 趙씨가 지적한 바와 같이 원래 아열대지방원산(亞熱帶地方原産)인 식물이므로 우리 국토에는 맞지 않을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사군자(四君子)나 준군자(準君子)중에서 국화(國花)로 내세울 만한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어느 모로 보든지 가장 알맞은 것에 ‘진달래’가 있는 것 같다. ‘진달래’란 일반적 명칭은 ‘천지꽃’이니 ‘두견화’니 등, 곳에 따라 각각 다르며 더는 이 진달래의 어원적(語源的) 해석이며 역사적인 유서(由緖)에 대해서는 그쪽 사학가(史學家)나 언어학자(言語學者)에게 맡기기로 하더라도 우선 식물학적(植物學的)인 면으로만 볼 때 우리의 풍토(風土)에 알맞은 식물에 ‘진달래’가 제일인 것 같다. 사실 이 꽃과 우리 민족과의 교섭(실생활면(實生活面)에서나 정서면(情緖面)에서)은 아주 깊어서 필자가 아는 한도 내만 하더라도 오랜 옛날부터 전하여 오는 3월 3일의 ‘화전(花煎)놀이’는 떡에 진달래의 분홍 꽃잎을 넣어서 그 빛깔과 향기를 즐겼고 보다 많은 詩人들의 노래로서 민족정서(民族情緖)에 많은 촉매적(觸媒的) 역할을 한 꽃임에 틀림없다. 또 종류도 대단히 많아서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30여종이나 되고 전 세계에는 3백종도 넘는다. 이의 분포는 백두산(白頭山)에서부터 한라산(漢拏山)에 이르는 전토(全土)에 걸쳐 있으며 그 양이 풍부하여 화계(花季)에 이르러 만산(滿山) 진달래는 확실히 아름다운 우리 강산(江山)이라는 인상을 깊이 주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품종이 많은 것만큼 꽃도 각색이나 이 꽃의 특징은 어느 종류나간에 그 품(品)이 담담하고 청초한 감(感)을 주는 것이 좋고 또 봄이 되자 다른 식물들이 대부분 잠자고 있을 때 마치 선구자(先驅者)처럼 제일 먼저 찬바람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부지런함이 좋은 것이다.
광복(光復) 10년, 모든 것이 재검토되어야 할 이때 이제는 국화(國花)에 대해서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도 왔다고 본다. 왜냐하면 국화(國花)란 실재적(實在的)인 것이면서도 관념적(觀念的)인 것이므로 이것이 미묘하게 국민정신(國民情神)에 작용하는 일이 많기에 전혀 무실(無實)한 것을 엉터리없이 과장화(誇張化) 한다든가 또 무의식중에 잘못 전하여질 때에는 필경 허무맹랑한 자기기만(自己欺滿)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국화(國花)를 개변(改變)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던 차 前記 趙 씨의 논의에 붙여서 몇 마디 적은 것이다.

- 朝鮮日報 1956년 2월 8일 / 韓國論爭史(1976년刊) 재수록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