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1년 9월 18일 토요일|
 

공연평

 

무브먼트 리서치를 통한 세 가지 창작적 시도
- 서울시무용단 『더 토핑』·국립무용단 『홀춤』




심정민(沈廷玟)(춤평론)

* 서울시무용단 『더 토핑』(12월3~4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서울시무용단의 기획공연 『더 토핑』은 ‘한국무용을 토핑하라!’라는 슬로건으로 대변된다. 『더 토핑』은 2015년 시작된 이래로 서울시무용단의 어느 공연보다도 과감한 창작적 시도를 펼쳐왔다. 단원과 외부 무용가를 아우르면서 다른 분야 예술가와의 교류, 타 춤장르와의 경계 부수기, 동시대적인 창작경향 수용 등을 통해 한국창작춤의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올해로 6년째를 맞이한 『더 토핑』은 12월3~4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감괘(坎卦)라는 주제로 물과 함께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세 작품을 선보였다.

여성 단원들이 공동안무한 『수류(水流), 다섯 개의 변곡(變曲)』은 물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움직임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일생을 중첩시킨다. 수(水), 청수(靑水), 격수(激水), 초수(超水), 열수(熱水) 등 다섯 장을 거치면서 십수 명에 달하는 여성 무용가들은 잔잔하고 소용돌이치고 격랑하는 물의 강도뿐 아니라 얕고 깊은 물의 깊이 그리고 흐르고 고이는 물의 흐름까지도 표현한다. ‘생명의 젖줄’로 상징되곤 하는 물의 다양한 면모를 여성의 일생에 비유한 것은 적절하다. 더욱이 바닥에서부터 천정에 이르는 공간에 수류와 관련된 영상을 투영함으로써 주제 이미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다만 주축 안무가가 없어서인지 응집력 있게 절정으로 끌어 올라가는 힘이 제대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일곱 명의 남성 단원들의 공동안무작인 『어 캄 시(A Calm Sea)』는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는 바다의 다른 모습인 폭풍과도 같은 파도를 형상화한다. 조용한 바다, 격랑의 바다, 위로의 바다를 통해 인간의 내면, 상처, 위로 등을 그려나간다. 남성 무용가들의 춤적 역동성은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그리고 비보잉를 넘나드는 넓은 범주의 움직임으로 인해 보다 폭넓게 느껴진다. 바닥에 흘러나오던 물이 무용수들에 의해 차올라지거나 마침내 넓게 퍼진 수면 위로 영상의 빛이 일렁이면서 작품의 이미지는 더욱 단단하게 새겨지게 된다. 몇몇 장면에서 지나치게 잘 알려진 음악이 작품의 신선도를 떨어뜨렸다는 점은 짚어봐야 한다.

유일한 외부 안무가인 김성훈은 십수 명에 달하는 남녀 무용가들과 『단(斷)』이란 신작을 선보였다. 사이의 얇은 선, 또 다른 시선, 침묵의 칼날, 번뇌라는 네 개의 장을 통해 서로 다른 삶 속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간극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의식과 표현, 환경과 상황, 고뇌와 역경, 옳고 그름, 감정과 관계, 아픔과 상처 등 많은 것에 대한 탐구를 관념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시청각적인 이미지로 표출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움직임이 있다. 움직임 자체는 현대무용적이지만 낮은 무게중심, 순환성, 단전호흡, 기공 등과 같은 특질을 내재한 한국무용가들에 의해 독특하고 밀도있는 춤이 완성되었다. 앞 작품인 『어 캄 씨(A Calm Sea)』부터 흘러나왔던 물은 이제 바닥 대부분을 채웠으며 이를 헤집고 다니는 여러 가지 움직임들이 색다른 동작성으로 승화되어 작품에 개성을 더한다. 김성훈의 안무작들 중 가장 두드러진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마지막에 가장 인상적으로 끝낼 수 있는 부분을 놓침으로써 이후 이어진 두세 장면에서 감흥을 반감시켰다는 점이다.

올해 『더 토핑』에서는 서울시무용단 단원들이 단합된 힘으로써 창작적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무브먼트 리서치 개념을 도입한 듯한데, 이러한 목적은 긍정적으로 달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근래 들어 기획공연들을 수행과제처럼 해치우기보다는 일련의 목적의식을 가지고 단계별로 실행해가는 듯하다는 점에서 서울시무용단의 커다란 그림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 국립무용단 『홀춤』(11월27~28일 별오름극장)
국립무용단은 2010년대 들어 전통적인 한국춤에 기반한 동시대적인 창작이라는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타 장르와의 협업을 적극 추진해왔다. 이 과정에서 혁신이나 실험이니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왔지만 한편으로 한국춤만의 고유한 존재감이 퇴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올해 첫 선을 보인 『홀춤』에서는 전통적인 한국춤에 대한 근간을 선명히 유지하는 선에서 새로운 창작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춤의 정체성과 고유성 그리고 동시대적인 창작 경향 사이에서 어떻게 접점을 찾고 균형을 잡아갈지는 국립무용단의 모든 구성원이 숙고할 수밖에 없는 과제다.
11월27~28일 별오름극장에서 있었던 『홀춤』에서는 경력 30년 이상의 단원 일곱 명에 의한 전통의 재구성이 펼쳐졌다. 혼자 추는 춤이라는 뜻의 홀춤에 맞게 김원경, 이소정, 윤성철, 정현숙, 박영애, 조수정, 박재순은 각자의 독무로서 창작력과 실연력을 낱낱이 펼쳐 보였다.
김원경의 『금향부』는 부채를 들고 추는 정교하고 섬세한 춤사위가 두드러진다. 선율에 맞춤 현란한 발디딤이 연속될 때는 마치 거문고 현 위를 타고 노는 듯한 인상마저 든다. 『푸너리』에서 이소정은 살풀이춤과 무당춤을 소재로 긴 대에 긴 천과 방울을 연결하여 살을 푸는 과정을 춤사위로 표현한다. 서로 다른 춤 분위기를 지녔으나 살을 푼다는 공통점으로 연결되는 두 춤의 접목이 흥미롭다.
윤성철의 『산산·수수』는 한량무 특유의 때론 호탕하고 때론 의연하고 때론 절제된 선형의 춤을 펼쳐 보인다. 그 일면에 삶의 희로애락과 이를 초월한 춤의 길까지 엿볼 수 있다. 정현숙의 『심향지전무』은 무속에서 유래된 신칼대신무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한을 신명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접신에 가까울 정도로 춤에 대한 몰입이 강렬하며 동시에 관객과 시선을 마주할 만큼 여유롭게 춤을 끌어가기도 한다.
박영애의 『삶_풀이』는 살풀이춤의 한과 통영진춤의 멋이 어우러진 춤으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그린다. 보다 자유로이 변형된 춤사위로 자신의 정서를 붉은색 수건에 담아 흩뿌리고 휘날린다. 『산수묵죽』에서 조수정은 신사임당이라는 당대의 진보적 여성상을 그녀의 예인으로서의 창작 활동과 중첩시켜 표현한다. 화려하기보다 진중하고 절제된 춤사위를 구사하면서도 세세한 풍류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승무 북가락과 진도북춤을 접목한 『보듬鼔』에서는 국립무용단에서 타악춤에 관한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박재순의 타악 리듬과 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장단을 어르고 달래면서 함께 노니는 듯하다가 다음 순간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는 듯하기도 하다. 관객으로 하여금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추임새를 내뱉게 할 수 있을 만한 타악춤꾼이 흔하지는 않다.
한국의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한국무용단체로서 국립무용단의 장점은 상당하다. 그중에서도 단원들의 기량은 국내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대규모 작품에서는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해야 할 수밖에 없으나 『홀춤』과 같은 기획공연을 통해서는 자신의 창작력이나 실연력을 여실히 보여줄 수 있다. 경력 30년 이상의 무용가들에 의한 무대라는 점에서 그들의 역량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한국무용은 정중동과 같은 특질이 지배적인 춤 장르다. 특히 전통춤이나 전통을 재구성한 춤의 경우 보다 밀접한 거리에서의 관람이 그 춤의 멋과 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홀춤』을 통해 소개된 전통춤을 재구성한 7개의 홀춤은 관객과의 간극이 최소화된 별오름극장에서 펼쳐짐으로써 어름, 발디딤, 호흡, 표정 등을 면밀하게 전달할 수 있었고 이는 곧 긍정적인 성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