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1년 9월 18일 토요일|
 

꽃향시향

 

수레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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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朴濟瑩)(시인, 달아실 편집장)

“꽃향시향”이라는 제목으로 이 글을 연재한 게 만 7년이 되었습니다. 일 년에 12편을 연재했으니 지금까지 총 84편의 글을 썼고 84개의 꽃에 관한 이야기를 한 셈입니다. 어떤 꽃들을 이야기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2014년: 동백, 매화, 목련, 벚꽃, 찔레꽃, 모란, 작약, 능소화, 국화, 꽃무릇, 억새, 수선화
2015년: 달맞이꽃, 오랑캐꽃, 진달래, 민들레, 할미꽃, 애기똥풀, 엉겅퀴, 패랭이꽃, 접시꽃, 백일홍, 구절초, 서리꽃
2016년: 무화과, 며느리밥풀꽃, 냉이꽃, 나팔꽃, 채송화, 라일락, 개망초, 해바라기, 장미, 사루비아, 코스모스, 수련
2017년: 수국, 봉선화, 노루오줌, 유채꽃, 연꽃, 양귀비, 명자꽃, 안개꽃, 칡꽃, 감꽃, 박태기꽃, 에델바이스
2018년: 대나무꽃, 앵두꽃, 바람꽃, 산수유, 얼레지, 메꽃, 강아지풀, 분꽃, 담쟁이, 호박꽃, 칸나, 금잔화
2019년: 튤립, 토끼풀, 해녀콩, 오얏꽃, 녹두꽃, 독초, 파꽃, 도라지꽃, 백합, 투구꽃, 아카시, 목화
2020년: 꽈리, 치자, 해당화, 장다리꽃, 선인장, 맥문동, 고마리, 말리꽃, 밤꽃, 원추리, 감자꽃, 맨드라미

지난 7년 동안 들려드린 꽃 이야기를 하나씩 떠올리다 보니, 괜히 짠하네요. 꽃과 시를 통해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다며 시작한 것이었는데, 그게 생각대로 잘 전달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으면 어쩌나 걱정도 됩니다. 물론 볼품없는 글을 그래도 읽어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제일 큽니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 소띠 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 해도 부족한 글이지만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21년을 시작하는 꽃으로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마침내 정했습니다. 수레국화입니다. 국화에 대해서는 이미 7년 전에 들려드리긴 했습니다만, 그때는 국화 일반의 이야기였지요. 오늘은 국화 중에서 유럽이 원산지인 그래서 이국적인 모양과 색을 지닌 ‘수레국화’를 꼭 집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수레국화라는 말이 낯설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레국화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국화과에 속하겠지요. 두산백과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또는 두해살이풀이고 학명은 Centaurea cyanus이다. 유럽 동부와 남부 원산이며 관상용으로 가꾸고 있다. 높이 30∼90cm이고 가지가 다소 갈라지며 흰 솜털로 덮여 있다. 잎은 어긋나고 밑 부분의 것은 거꾸로 세운 듯한 바소꼴이며 깃처럼 깊게 갈라지지만 윗부분의 것은 줄 모양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여름에서 가을까지 피지만 온실에서 가꾼 것은 봄에도 핀다. 두화(頭花)는 가지와 원줄기 끝에 1개씩 달리고 많은 품종이 있으며 색깔이 다양하다. 꽃 전체의 형태는 방사형으로 배열되어 있고 모두 관상화이지만 가장자리의 것은 크기 때문에 설상화같이 보인다. 총포조각은 4줄로 배열하며 날카롭고 긴 타원형 또는 타원형 줄모양으로 가장자리는 파란색을 띤다. 독일의 국화(國花)이며, 꽃말은 '행복감'이다.”

학명 Centaurea cyanus에서 종명 cyanus는 ‘옥색, 연두색’이라는 뜻이고, 속명 Centaure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괴물 켄타우르스(센타우르스)에서 온 이름입니다. 수레국화는 남청색, 청색, 연한 홍색, 백색 등 다양한 색깔을 지녔지만 야생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보랏빛을 띤 청색’의 꽃이지요. 국화의 일종이지만 여름에도 피는 꽃인데, 그 모양이 수레바퀴를 닮았다 해서 수레국화라고 이름이 붙었다지요. 달구지국화라고도 불리는 수레국화를 일본에서는 화살바퀴를 닮았다고 해서 시차국(矢車菊)이라 부르고, 미국에서는 부인들의 모자를 닮았다 해서 Blue bonnet(푸른모자)로 부른다고 합니다. 그 밖에 남부용(男芙蓉), 선옹초(仙翁草), 도깨비부채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고흐의 그림(“수레국화와 양귀비가 담긴 꽃병”, “수레국화가 있는 밀밭” 등)에서도 볼 수 있고, 이집트의 투탕카멘 관 속에서 수레국화 꽃다발이 나왔다는 설도 전해지지요.
아무튼 유럽이 원산지인 수레국화는 독일의 국화(國花)이고 독일에서는 ‘카이저(혹은 카이젤) 황제의 꽃’이라 불리기도 하고, 프로이센[옛 독일, (영)프러시아] 황실을 상징하는 꽃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는 이런 일화가 전해집니다.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을 공격했을 때, 루이제 황후가 자녀들을 데리고 급히 피신을 했는데, 아직 어린 자녀들이 놀라고 흥분하여 어쩔 줄 몰라 하자 그곳 밭에 피어있던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주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자녀들의 흥분이 가라앉았는데, 그 꽃이 바로 수레국화였다고 합니다. 그때 그 자녀들 중 한 사람이 어른이 되어 황제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프로이센 7대 국왕(1861~1888)이자 초대 독일 제국의 황제(1871~1888)가 된 빌헬름 1세(빌헬름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폰 프로이센, 1797~1888)입니다. 그가 1871년 나폴레옹 3세를 무찔렀을 때 수레국화를 황실의 문장(紋章)으로 정하고, 궁정의 정원을 수레국화로 채웠다고 합니다.
카이저(Kaiser)라는 말이 나온 김에 조금 더 이야기하면, 카이저(Kaiser)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에서 황제를 부르던 칭호인데, 러시아어의 ‘차르(Tsar)’와 마찬가지로 고대 로마 제국에서 황제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던 ‘카이사르(Caesar)’에서 유래했습니다. 현대 독일어에서는 ‘황제’를 뜻하는 일반명사로 쓰이는 말이기도 하지만, 흔히 빌헬름 1세의 손자이며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자이기도 한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빌헬름 2세(프리드리히 빌헬름 빅토어 알베르트, 1859~1941)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이기도 합니다. 29세의 젊은 나이에 황제에 올라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를 몰아내고 마침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흉으로 알려진 빌헬름 2세. 세계열강 중에서 대한제국의 고종을 ‘카이저 폰 코레아(Kaiser von Korea)’, 즉 ‘한국의 황제’라고 호칭해 준 유일한 인사이기도 한 빌헬름 2세. 빅토리아 여왕이 외손자인 빌헬름 2세를 얼마나 예뻐했는지 17세 되던 해 생일 선물로 킬리만자로 산을 통째로 주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아, 수레국화와 관련해서 아이러니한 게 하나 있지요.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독일은 오랫동안 앙숙이었는데, 독일의 국화인 수레국화가 프랑스에서도 꽤 의미 있는 꽃이란 사실입니다. 영국을 비롯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와 같은 영연방 국가들과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11월11일을 현충일로 지정하여 기념행사를 치르고 있는데,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꽃이 바로 붉은 양귀비꽃입니다. 해마다 현충일이 되면 많은 시민들이 양귀비꽃 모양의 배지를 달고, 거리에는 종이로 만든 양귀비꽃을 파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그래서 현충일을 ‘포피(Poppy, 양귀비)데이’라고도 부르지요.
그런데 유독 프랑스에서만큼은 붉은색 양귀비가 아닌 푸른색 ‘수레국화’가 거리를 메웁니다. 프랑스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들을 흔히 블루에(Bleuet)라고 부르는데, 당시 이들이 입었던 군복이 파란색이었던 까닭입니다. 이런 파란색 군복의 프랑스 군인들이 전장에 핀 파란색 수레국화를 보며 전쟁의 혹독함을 위로받았다는 데서 수레국화가 프랑스군을 상징하게 되었고, 프랑스 정부는 마침내 1935년 11월11일 현충일을 기해 전쟁기념일의 상징으로 수레국화(Bleuet de France) 판매를 공식 인정하였다고 합니다.
이쯤해서 이제는 시 얘기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시인들은 과연 수레국화라는 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노래하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류인서 시인의 「수레국화」를 읽어보겠습니다.

수레들을 보았네
아흔의 밤을 아흔의 수레에 나눠싣고 헐거워진 안경알로 시간 굴림대를 밀고 가는 당신
손수레 외발수레, 동어반복의 수레들을 팔아 바퀴를 사는, 바퀴를 팔아 다시 수레를 사는 당신이었어
따라쟁이 병정개미들이 행군 가고 있는 길이었네 수레 따라 냄새 길 따라
― 류인서, 「수레국화」 부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수레국화라 제목을 붙였지만 정작 수레국화라는 꽃은 없습니다. 시인은 오히려 수레를 팔아 바퀴를 사고, 바퀴를 팔아 수레를 사면서 끊임없이 수레를 밀고 가야 하는 ‘시시포스의 반목의 운명’을 짊어진 생의 고단함만을 보여주고 있지요. 꽃 핌의 화려한 생도 아니고, 꽃 짐의 초라한 죽음도 아니고, 삶이란 그저 피고 짐의 연속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에는 이규리 시인의 「수레국화」입니다.

오늘 이곳엔 한 사람만 빼고 다 왔습니다

마당엔 옛 주인이 피운 꽃들 한창인데요
파란 수레국화를 보셨나요
누구, 왜 안 왔는지 아무에게도 묻지 못했는데
파란 꽃, 문득 빈 자리의 빛깔 같습니다

관계는 참 자주 밟히곤 합니다
멀리 있는 음식을 집을 때 누군가 접시를 가까이 옮겨 주었는데
잠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유심히 본다면 내 얼굴에 수레국화를 볼까요
그 빛깔을 가지려면
꽃만큼이나 고단했을 겁니다

오늘 이곳엔 한 사람만 빼고 다 있습니다
― 이규리, 「수레국화」 부분

곧 설이 다가올 텐데요. 고향집에 식구들 하나둘 모여들 텐데요. 생각하면 어느 해부턴가 익숙했던 얼굴들이 하나둘 보이지 않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식구가 늘었는데 어느 해부터는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 하나둘 생겨납니다. 내 앞에 접시를 옮겨 주곤 했던 그 사람의 얼굴이 문득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빈 자리가, 그 사람의 자취가 아프게 밟히겠지요. 시인은 그 허전하고 슬픈 마음을 파란 꽃 수레국화에 빗대고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안채영 시인의 「수레국화」를 읽어보겠습니다.

빈 팔월 수레국화 꽃밭을 끌고 간다
가벼운 것들만이 무거운 것들을 끌고 갈 수 있다는 듯
분분한 솜털도 덥게 칠월을 달려왔다

우리는 말을 배열했었지 파란 모자를 장난으로 주고받았지. 말미가 없는 것들은 발설의 꽃말을 가지지 못한 전설이 되지. 수레가 텅 비면 저절로 움직이기도 하겠지만 미동이란 무거운 쪽부터 미끄러져가지

끝만 늙어가는 것이 꽃말이다
우리는 서로 관상觀相이었다
가혹한 꽃말일수록 안 보이는 틈에 흔들리고
총총총 여러 번의 계절을 채굴하고 나서야
씨앗들만 남는다

일년생 꽃말은 너무 가볍다
언젠가는 그 가벼운 꽃말이 꽃밭을 통째로 끌고 간다
― 안채영, 「수레국화」 부분

어떤 느낌인가요? 저는 “가벼운 것들만이 무거운 것들을 끌고 갈 수 있다”는 문장과 “가벼운 꽃말이 꽃밭을 통째로 끌고 간다”는 문장에 그만 온 마음이 끌리고 맙니다. 너무 가까워서, 너무 친해서, 오히려 가볍게 허투루 생각했던 그 사람이야말로 실은 내 삶을 통째로 맡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이란 걸 차마 잊고 산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