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영화살롱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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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식(朴泰植)(영화평론)

언덕 꼭대기엔 침묵이 내려앉고/나무 우듬지는 숨소리조차 죽이고/작은 새들은 숲에서 입을 다물고/그대 역시 저들처럼 쉬게 되리라. 이는 괴테가 스위스 그라우뷘덴 주의 엥가딘이라는 작은 마을에 들렀다가 벽에 낙서한 시란다. 아무 소리 들리는 않는 조용한 자연에서 자신에게 곧 다가올 죽음을 예견한 것이다. 마침 괴테가 한적한 산길을 산책하는 중이었을까?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Coda, 클로드 라롱드 감독, 극영화/음악, 캐나다, 2019년, 97분)를 보면 괴테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시에 잘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영화의 주인공인 노년의 피아니스트 헨리 콜(패트릭 스튜어트)이면 딱 적당하겠다. 거기에 헨리를 깊이 이해하는 충실한 매니저 폴(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과 거장 피아니스트 헨리를 취재하는 뉴요커 잡지의 기자 헬렌(케이티 홈즈)이 더해지면 어떨까? 그녀는 한 때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젊은 여성이다.
헨리는 2년 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병치레를 오래 한 때문인데 아내가 죽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무대에 복귀한다. 헨리의 능력을 높이 산 폴의 적극적인 권유가 그의 복귀를 이끌어 낸 것이다. 하지만 헨리는 안정을 찾지 못하고, 특히 무대에 서면 종종 공황상태에 빠진다. 겨우겨우 위기를 넘기곤 하지만 매번 죽을듯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 때마다 폴이 큰 역할을 한다.
영화의 또 한 가지 축은 헬렌을 통해 음악이 무엇인지, 예술의 참 모습이 무엇인지 탐구해나가는 작업이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모든 게 글을 써야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라 했으니 헨리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자신이 이해한 대로 글을 써내려가야 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이 그녀의 글로 장식되는 이유다.
영화는 피아니스트의 세계가 갖는 특징들을 잘 열거한다. 중심 스토리에서 잠깐씩 비켜갈 적마다 그 특징들이 거론되는데 헨리처럼 훌륭한 연주가가 되려는 소년, 지인들과 둘러앉은 시골 식탁에서 나누는 대화, 숲길 산책, 엥가딘 호텔 종업원 프란츠와 두는 장기, 헨리가 직접 들었다는 호로비츠의 입담, 수영장의 어린이 등등.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인 영화니만치 많은 피아노곡을 감상할 수 있었다. 슈만, 바흐, 라흐마니노프, 슈베르트, 비제, 홀스트, 스메타나, 쇼팽, 그리고 베토벤까지.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극장에 울려 퍼지는 피아노 연주는 실제 연주회에 앉아있는 느낌을 주었다. 오디오 시설이 좋은 극장을 찾아가시길 바란다.
괴테의 시에서 알 수 있듯 인생을 마무리해야 하는 피아니스트의 말년이 영화의 주제다. 아름다웠던 순간은 어느덧 다 지나고 가느다란 희망마저 사라진 지금, 그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무엇일까? 헨리가 앉은 벤치와 마주한 기괴한 바위는 그의 처지와 어쩌면 그리 닮았는지 모르겠다. 코다(Coda)는 악곡을 끝내기 위해 특별히 추가된 마침 부분의 표기다. 마침 부분에서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삶의 강한 긍정! 그래서 코다를 영화 제목으로 삼았나보다. 영화에 나오는 주옥같은 대사들과 아름다운 풍경들을 음미하면서 영화를 보시기 바란다. 그저 흘려 넘길 작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