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1년 11월 28일 일요일|
 

춤산책

 

인식의 변화와 대중 춤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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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李東祐)(춤평론)

성스런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길에 붙어있는 선교축제 행사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행사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행사의 성격에 맞게 다양한 공연프로그램이 구성되어있었다. 그중에서 어둑한 배경에 환상적인 의상을 입은 한 무용수가 관능적인 포즈로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의 스냅사진이 있었고 그 밑에는 “선교무용 - 폴댄스”라 적혀있었다.
‘오호~ 에로틱 댄스와 선교무용의 만남이라!’
그 전단지에는 이 외 다양한 프로그램들 역시 소개되어 있음에도 이를 제치고 ‘선교무용 - 폴댄스’라는 문구와 그 이미지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많이들 알다시피 폴댄스는 도구의 특성상 맨살의 마찰로 몸의 움직임과 위치를 조절해야 되기 때문에 옷을 많이 입는 것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표현의 방법도 제한적이어서 다리를 벌리고 몸을 젖히는 등, 본의가 아니더라도 동작으로든 의상으로든 만들어내는 자태들이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불과 십여 년 전 까지만 해도 몇 몇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주일 예배시간에는 복음성가도 못 부르고 반주도 피아노와 오르겐 외에는 사용을 금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걸 감안해본다면, 아무리 폴댄스가 대중화된 지 한참 됐지만 선교축제에 등장예정인 폴댄스란, 누구의 기획인지는 몰라도 실로 경이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는데, 그 이유는 폴댄스의 기원에 있다.

폴댄스의 기원은 18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논란과 각광을 한 몸에 받던 “리틀 이집트”라는 댄스그룹에서 선보이던 엑조틱 댄스, 즉 관능적 댄스 형태가 큰 유행을 하며 이와 유사한 형태의 춤과 단체들이 유행을 근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리스 신화나 고대 아시아에 대한 환상이 여전히 서양에 팽배했던 시절이었으며 이사도라 덩컨과 루스 세인트 데니스가 이러한 소재를 가지고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후 이 폴 (Pole)을 가지고 여러 형태의 용도로 사용하며 1980년대에 들어 오늘날 사람들이 인식하는 형태인 폴댄스가 스트립 조인트에서 맨살의 여성들이 – 춤을 춘다기보다는 – 곡예에 가까운 퇴폐미를 선보이는 형식으로 정착하여 폴댄스란 춤이 아닌 ‘퇴폐적 기교’라는 편견이 1990년대까지 특히 미국문화에 친숙한 사람들에게는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당시 폴댄스를 추는 모습을 보면 날씬하고 가벼워 보이는 스트리퍼들이 사뿐하게 장대에 안착해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빙글빙글 돌기도 하기 때문에, 저렇게 연약한(?) 여자들도 이렇게나 쉽게 봉을 타니 힘 좀 자랑하는 사람도 ‘어디 나도 한 번?’ 하며 금방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란 착각을 할 수 있다. 즉, ‘대중적 = 쉽다’와 같은 공식에 덧붙여 퇴폐업소 여성 종사자들이 하는 것이니 비전문적이고 쉬울 것이라고 착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다.
그러나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장대 위에서 쌀가마니보다 더 나가는 몸무게를 두 팔이나 두 다리만으로 지탱을 하며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체력적인 소모를 요구하는 것인지 팔 굽혀펴기나 턱걸이만 해봐도 납득이 갈만하지 않은가. 자기 몸을 들어 올린다는 것은 발레리나를 들어 올리는 발레리노 만큼의 체력을 요구하며 그만큼의 근력이 필요한 것이다. 서커스에서 차력사가 봉에서 수직으로 두 팔을 편 채 몸을 일직선으로 펴는 동작은 묘기라고 여기면서 단지 그것도 한 때 스트리퍼의 의해 눈요기용으로 행해졌다고 해서 폴댄스를 퇴폐로만 몰아간다는 것은 편견의 소치일 뿐이다.

폴댄스가 주류 종목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각광을 받게 된 것은 그 역사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은 2000년대의 일이라고 한다. 헬스장에서 이루어지던 다이어트 요법이 에어로빅, 요가, 발레요가, 벨리댄스, 클라이밍 등으로 점차 변화해 나가면서 유연성과 근력 그리고 체력적 소모가 많은 폴댄스에도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은 시간문제이자,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이다.
폴댄스 경험자들이 말하는 폴댄스의 효과로는, 근육 사용량이 높아 기초대사량이 늘어나며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게 되어 탄탄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극한의 운동을 통해 집중력 향상, 성취감 향상, 그리고 자존감도 상승하게 된다는데 정신과 의사들도 우울증 환자들에게 폴댄스를 권하기도 한다고 한다. 따라서 폴댄스는 더 이상 스트리퍼의 퇴폐 춤이 아닌 예술성과 운동효과를 겸비한 건전 운동요법 중 하나로 등극하게 되었다. 출생은 불우(?)해도 대중의 의식 변화에 따른 춤의 신분 상승은 비단 폴댄스 뿐만이 아니다. 탱고, 힙합, 볼룸 댄스, 벨리댄스도 그랬다. 이제 와서 ‘보수적이고’, ‘정형화된’ 춤이라 비난받는 발레의 역사 역시 역사적으로 펼쳐보면 도발과 파격의 역사였다. 한마디로 우리가 지금은 예술로 여기는 춤의 대부분 장르들이 과거는 눈요깃감으로 하찮게 여김을 받았을 뿐더러 춤을 추던 무용수 역시 신분이 낮은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춤을 크게 분류 한다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추는 막춤,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대중 춤, 종교의식 등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춤 그리고 공연장에서 올리는 예술춤 정도로 나눌 수 있겠다. 어찌 보면 춤의 계급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춤의 세계에서도 차별이 존재한다 할 수 있다. 그것은 춤의 본질 보다는 춤을 추는 이의 사회적 위상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한국의 카바레 춤은 집 안에 갇혀 지내던 주부들이 창살 없는 감옥에서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남편이 출근한 후 장바구니를 들고 나가 지하 카바레에서 몰래 춤을 추던, 이른바 ‘춤바람’이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받은 디스코, 브레이크댄스는 과거 퇴폐장소로 낙인찍힌 디스코텍 일명 ‘닭장’에서의 퇴폐 행위였고, 가수들 뒤에서 추어진 백 댄스도 가수들 들러리 취급밖에 받질 못했다. 이제와 뒤돌아보면 피 끓는 연령의 남녀를 여러 가지 제도로 구속시켜놓고서 주변인들의 눈을 피해, 춤을 췄다는 프레임을 씌워 건강한 이들을 정죄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데 애초부터 춤을 수면으로 끌어올렸었더라면 이에 대한 부작용도 없이 얼마나 좋았을까. 정치적 여론몰이에 놀아나 정작 사회적으로 희생이 된 사람들을 비난했던 나 자신도 반성하게 된다.
세상이 바뀌어 이 같은 종목들이 점차 각광을 받으며 이제는 스포츠 댄스 등으로 승격되며 사교댄스, 볼룸댄스, 댄스스포츠 등의 명칭과 함께 그 이미지가 높아졌고, 특히 디스코는 잊을만하면 재조명이 되고 있는데, 최근에도 몇 몇 한류 가수들을 통해 다시 각광 받고 있으며, 브레이크댄스는 2024년부터 올림픽 잠정종목으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으며, 백 댄스는 ’방송 댄스‘로 명칭과 개념이 바뀌어 이를 토대로 한 한국 아이돌의 세계화에 발맞추어 고난이도의 칼군무 테크닉을 넘어 이제 예술성까지 논의되고 있다. 특히 백댄서 출신이 무용가로, 현대무용 전공자가 아이돌 스타로 활약하며 전 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등 장르와 신분의 구분을 허물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 춤의 변화와 인기의 중심에는 남성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대중 춤에 대한 인식은 물론 춤추는 남자에 대한 선입견이 보편적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어가고 있다. 어릴 적, 내가 춤을 배운다는 사실을 안 친구가 놀린 적이 있었다. 아버지 몰래 춤을 배웠고, 또 믿었던 친구로부터 놀림까지 받았던 경험으로 과거 춤을 배우는 남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어떠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로서 그 누구보다 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큰 변화가 반갑기만 하다.

춤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음악과 미술 같이 다른 인간의 표현수단 보다 훨씬 원초적인 방법이어서인지 아무나 범접하기 쉽지 않다는 감이 있는 듯하다. 세계의 역사를 봐도 권위주의와 경건주의가 팽배하던 시대에서는 음악과 미술은 그나마 종교적 표현을 위해서는 허용했지만 춤은 종교적 의식에서조차도 배제한 나라도 있었을 정도로 가장 소외되고 핍박을 받은 예술종목이 바로 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오늘날에도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점잖은 사람들이 취미로 노래나 악기실력을 뽐내는 일은 있어도 춤을 취미로 배운다거나 춤으로 그 실력을 뽐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춤은 몸 전체를 쓴다는 특수성 때문에 다른 예술분야와 다른 차원의 자신의 육체와 감정에 대한 솔직함을 남에게 노출하기 때문에 범접하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러한 춤에 대한 편견의 역사는 보통 춤에 관심 없거나 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진 권력자 한 사람의 편견이 초래한 결과다. 자신의 신체를 원하는 이상적인 형태로 아름답게 움직일 수 있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함이 문화적 손실을 초래한 것이다. 이처럼 가깝고도 먼 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좀 더 친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춤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중들의 인상이 어떠한지도 중요하다.
장황한 이야기였지만 요는, 추어온 혹은 우리마저도 예술성이 없다거나 천박하다며 하찮게 여기던 춤의 장르도 세월이 변함에 따라 수면으로 올라와 예술적 반열에 올라 기존의 예술춤 장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사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샌가 클래식 장르보다 더 사랑받는 주류 장르가 되어 누구나 열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춤추는 것에 대한 인식이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화와 더불어 긍정적으로 돌아섰을 뿐만 아니라 대중춤 인구도 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장성이 중요한 예술춤은 팬데믹으로 인한 잦은 공연취소와 졸업 후 취업의 어려움 등으로 기존의 방식으로 유지해 나가는 데 있어서 위협을 받고 있다. 음악이나 미술은 거리를 두고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진 않지만 접촉과 팀워크가 주를 이루는 춤의 위기는, 무용과 지원자들이 점점 줄어들어 대학들의 과 축소에 폐과되는 일이 속출하는 등 그 이전부터 일어나고 있었다. 대중춤의 인구는 늘어가는 반면, 예술춤에 대한 인구는 여러 상황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이러다간 예술춤이 대중춤을 하기 위한 기초교육으로 입장이 바뀌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춤을 전공하면서 연예계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예전부터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있기 전부터 이러한 위기의 징조에 무용계가 자신의 분야를 키우기 위해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할지 미리 모색했어야 했는데 무용가 개인의 영역 키우기에만 치중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뒤돌아봐야 한다. 그러니 먼저 것은 나중 되고 나중 것은 먼저 된다는 교훈으로 위기를 기회로 지금에라도 모두가 영속하기 위한 생각을 모아 변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서두에 언급한 잊지 못할 그 ‘선교무용 - 폴댄스’가 성황리에 잘 끝났을지 이따금 생각나곤 한다. 과연 많은 이들이 폴댄스를 보고 주님을 영접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