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자전거살롱

 

전동킥보드와 함께하는 잔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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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우(全相宇)(여행작가)

가을인가 했더니 어느새 겨울로 넘어왔다. 짧아질 대로 짧아진 해가 아직 눈도 뜨지 않은 시간에 강을 따라 나 있는 잔거길로 들어간다. 비행기가 공항에서 뜨거나 내릴 때 힘이 드는 것과 같이 잔거도 뜻밖에 이 잔거길에 접어들거나 나가면서 사고가 많다. 일단 이륙해서 순항 고도에 달하면 비행기가 안정되어 자동운항에 들어가듯이 잔거도 잔거길에 들어와 일정 속도로 달리게 되면 다른 잔거하고 부딪치거나 제풀에 자빠링을 하는 일이 뜸하다.
그 일정 속도 달리기의 안정감을 한동안은 접어 두어야 하게 되었다. 이달 10일부터 잔거길에 전동킥보드가 다니게 된 거다. 여태 다른 길보다 마음 편히 타던 잔거길에서도 이제는 앞뒤, 오른쪽, 왼쪽 좀 더 살펴야 하게 되었다. 그동안도 전동킥보드들이 잔거길에 드나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이제 킥보드에게 공식적으로 열린 거다. 잔거와 킥보드, 전혀 다른 DNA를 가진 두 다른 탈 것이 좁은 잔거길을 같이 쓰게 되었으니 한동안은 미리 내다보지 못한 이런저런 일들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댓글 말싸움 거리가 또 하나 늘겠다.
넓지 않은 땅덩어리에 서울과 그 곁 동네에 2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머리를 비벼가며 살아가니 뭐든지 모자라고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다. 사람도 많고, 차도 넘치고, 스물네 번의 정부 대책에도 잠잘 곳 없다고 난리이고, 길이 좁아 출근길에 이미 지쳐버리고, 집에 닿으면 밥만 먹고 자면서 다음 날 출근 걱정하는 곳이 서울이다. 이미 1960년대 중반에 “서울은 만원”이라고 떠들었으니 새삼 뭐에 이 콩나물시루를 견주겠나. 그 서울의 과부하가 드디어 잔거길에도 미치게 된 거다.
2017년 전국에 7만5천 대 수준이던 전동킥보드가 올 들어 20만 대 이상으로 늘었고, 이 가운데 대부분은 2018년 도입된 공유형 킥보드다. 킥보드가 많아지면서 사고도 많아졌다. 올 상반기 사고 건수가 이미 지난해 전체 사고 건수 890건에 가까운 886건이다. 여기저기 물어보지 않아도 킥보드 사고를 당한 이를 심심찮게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전동킥보드는 법률상 원동기장치 자전거로 되어있어 원동기장치자전거면허 이상의 운전면허가 있어야 하지만 12월10일부터는 운전면허가 필요 없어져 만 13세부터 탈 수 있게 되었다. 그 또래 아이들의 정신적 육체적 성장을 생각할 때, 13세와 16세를 고작 세 살 차이라고 우습게 볼 수 없는 나이 아닌가. 열여섯 나이의 젊은이에게 킥보드는 도구에 그칠 수 있겠지만 열셋 넘어선 어린이에게 전동킥보드는 도구를 넘어선 기계라고 봐야 한다. 도구와 기계의 차이를 사람이 이용하느냐 이용당하느냐로 가름한다면 물불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에게 폭발물을 안겨주는 것과 뭐가 다르겠나.
다들 빡빡하게 사는 마당에 ‘잔거길은 잔거에게만’ 하고 고집을 부리고 싶지는 않다. 킥라니(킥보드+고라니)들과 함께 평화 공존하는 길을 찾는 게 바람직한 일이고, 앞뒤를 가름하지 못하는 어린 킥라니들에겐 싫지 않은 소리로 꾸중도 해가며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없도록 새로운 바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길밖에 없겠다. 동해안에서 서울로 활어를 보낼 때 낙지나 게 한두 마리를 넣어 보내야 활어들이 서울까지 살아온다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