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역사살롱

 

조선 수신사 김기수의 놀람과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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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문(朴赫文)(소설가)

“화륜선은 매우 빨랐고 안전했습니다. 시모노세키를 거쳐 단번에 고베항에 도착했습니다. 왕궁이 있는 도쿄까지는 육로로 이동해야 해서 배에서 내렸습니다. 고베 거리에는 말로만 듣던 서양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키는 매우 컸고 노랑머리에 움푹한 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의복은 대부분 비슷했는데 소매가 넓고 통이 넓은 우리의 옷과 달리 몸에 달라붙는 옷이었습니다. 하지만 움직이는 데 불편함이 없어 보였고 매우 날렵해 보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고베에서 도쿄로 가는 마차였습니다. 그들의 마차는 화륜차(火輪車)라 불렸습니다. 말이 끄는 것이 아니라 증기를 이용해 움직인다고 하는데 거대한 집 여러 채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속도는 매우 빨라 천둥번개처럼 움직이고 비바람처럼 날뛰어 한 시간에 300~400리를 달린다고 합니다. 집 안은 매우 편안하여 조금도 요동치지 않습니다. 담배 한 대 피울 동안 90리 길을 움직인다고 하니 가히 기절할 노릇이었습니다.
저들의 왕을 만났는데 그는 25세 정도의 젊은이로 서양인들 복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의정에 해당하는 태정대신과 외무경, 육군경 등을 만났는데 대부분 30~40대의 젊은 사람들로 서양식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매우 정중하면서도 패기가 있었고 또 자신감이 가득 찼습니다.
저들은 자신들의 임금에게 절을 할 때도 모자를 벗고 고개만 끄덕일 뿐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례의(五禮儀)에 따라서 예를 갖추어 저들의 왕을 대하였습니다. 야만스러운 저들에게 주자의 예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1776년 일본에 수신사로 갔던 김기수가 쓴 글이다. 일본의 새로운 문명에 대해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들의 예의 없음을 비꼬는 내용이다. 수신사로 뽑힌 김기수는 당시 당하관인 응교라는 벼슬을 하던 사람인데 예법에 밝았다. 조선 조정에서 일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를 당상관인 정3품 예조 참의 벼슬을 올린 후 그를 수신사로 보냈다. 힘에는 굴복당했지만 우리는 주자의 예를 실천하는 나라라는 것을 일본에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김기수는 조선 조정의 의도대로 가는 곳마다 예법을 지키며 일본 관리와 일왕을 대했다.
부산에 도착한 김기수를 일본으로 데려간 배는 황룡환이라는 화륜선었다. 이 배는 일왕의 전용선이었다. 100년도 더 전인 1763년 말 통신사가 되어 일본에 가던 김인겸이 쓴 「일동장유가」를 참고해보면 윗글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70여 명의 수신사 일행을 매우 빠르고 안전하게 대마도가 아닌 고베까지 자신들의 배로 직접 실어 나른 일본의 조선 수신사를 맞이하는 태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을 다녀온 성리학자 김기수는 그들이 이룩한 새로운 문명에 놀랐고 그의 생각은 단번에 쇄국에서 개방으로 바뀐다. 이 무렵 조선의 정치가들이 세상 변화에 민감하게 움직였다면 그 이후 조선에서 벌어진 일은 달라졌을 것이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낡은 사상에 얽매여 급변하는 현재를 재단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구한말의 어두운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