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춤 스크랩북

 

瀕死(빈사)의 白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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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東華(조동화)()

영웅이나 왕자(往者)는 그 시대를 지배하는 매혹적인 리듬을 만들고 그것을 구사(驅使)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만일 리듬이란 용어를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이라면 요순제(堯舜帝)는 아름다운 리듬으로 백성을 다스린 주자(奏者)였고, 히틀러는 악마적 리듬으로 시민을 마비케 한 요술사였음이 분명하다.
어떻든 이들 당대를 휩쓸 수 있었던 리듬은 그것이 환각(幻覺)이면 환각대로, 선(善)이면 선대로, 같은 시대의 어떤 리듬보다도 선명한 마력(魔力)의 광채를 발휘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것에 사람들이 그토록 반해버릴 수가 없지 않은가? 적어도 한 시대를 풍미(風靡)한 예술가의 경우, 그 예술가의 고운 리듬의 문양(紋樣)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파도처럼 아직도 우리를 잡고 놓지 않는 것이다.
1929년에 46세를 일기로 죽은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는 적어도 이런 부류에 속하는 현란한 리듬의 소유자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래서 안나 파블로바를 잃음과 동시에 발레는 예술의 절정(絶頂)에서 서서히 빛을 잃고 관객은 흩어지기 시작하였다고 표현하는 이도 있을 정도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발레리나였다.
특히 「빠드브레」(발레 스텝의 이름·발끝으로 모이를 줍는 참새처럼 발을 옮겨 놓는 걸음)와 백조(白鳥)의 날개처럼 팔을 허우적거리는 동작만을 가지고 상상(Saint-Saens) 작곡 「백조」 멜로디에 맞추는 불과 3분 남짓한 「빈사(瀕死)의 백조」는 그녀의 숱한 작품 중에서도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불멸의 춤이다.
파블로바가 죽은 후 런던에선 그녀의 추도회(追悼會)가 있었다.
이날 밤은 평소 그녀의 춤 음악을 맡곤 했던 콘스탄트 란바드가 상상의 「백조」를 지휘하였다. 이날 밤의 상황을, 그녀의 친구였고 흥행자이기도 하였던 휴우록(S. Hurok)은 이렇게 기술(記述)하고 있다.

… 오케스트라의 최초의 음악과 더불어 막이 오르면 무대는 캄캄하고 아무 장식도 없고 사람도 없다. 그저 한 가닥의 스포트라이트가 지금은 가고 없는 발레리나를 좇아 이리저리로 무대를 밝혔다. 그리고 관객은, 오케스트라가 이제는 영원히 파블로바와 끊으려고 하여도 끊을 수 없는 그 상상의 곡 「백조」를 연주하는 동안 모두 기립하여 침묵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韓華信 譯)

연극이나 판소리를 통해 매번 듣고 보는 춘향전(春香傳)이지만 일단 옥중(獄中) 장면에 이르면 언제나 눈물 흘리듯, 세계의 젊고 늙은 춤 학도들은 이 간결한 추억문(追憶文)에 아직도 눈물을 흘린다. 이것은 한 마디로 파블로바의 강렬한 리듬이 아직도 그들을 휘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밤중 우리 방송 음악에 으레 나오게 마련인 상상의 「백조」를 들을 때마다 나는 휴우록의 이 장엄한 추억의 글이 떠오르며, 더불어 따각따각 무대 위를 춤추며 다니는 「빠드브레」의 빠른 발끝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어찔할 수 없다. (月刊 「춤」 발행인)

샘터 1976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