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1년 11월 28일 일요일|
 

춤 스크랩북

 

터무니없는 환상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 가을에 띄우는 往復葉書




趙東華(月刊 「춤」 發行人)

배동순 여사에게
배 여사한테 편지를 쓰라는 반가운 청이기에 당장 응했습니다.
일의 전달이라면 전화로서도 충분히 될 수 있으나, 마음의 표현은 아무래도 말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배 여사에게는 말로만은 안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작년, 그처럼 어려운 시기에 나에게 머물 피난처를 제공하여준 당신의 남편 양종해 감독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말을 전하는 그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나에겐 오랜 친구도 있었고, 선배도 있었으나 선뜻 구원의 손을 준 사람은 의외 분이었던 것에 나는 무한한 부끄러움과 고마움을 가집니다.
한 가장(家長)이 전혀 예기치 않게 직장을 쫓겨났을 때의 외로움이나 슬픔은 무엇에도 비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장 내일부터 생활의 리듬이 헝클어지는 그 무서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족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하여서, 아침 그 시간에 집을 나서야 하는데, 갈 곳이 없어졌을 때의 괴로움, 그것은 말로 설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순간 나에게 고통에서 탈출할 곁문을 열어준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거기서 몇 달 쉬면서 처음으로 나의 걸어온 지난 일과 앞으로 걸어갈 일을 생각할 시간을 얻었습니다. 뉘우칠 일과, 용서할 일도 더불어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을 얻은 것입니다. 이 일 양 감독에게 감사합니다.

배 여사와 나는 중요한 세월, 십여 년 동안을 한 직장에서 살며, 비교적 많은 얘기를 나눴던 것 같습니다만 그 후 전화 한번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을 보면 아침 일찍 차 마시러 나오는 손님들처럼 그저 한산한 분위기 때문에 서로 마주 앉게 된 그런 관계에 불과했던 것 같아 죄송한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상대를 알지 못하고 나를 깊이 알리지 못한 것이 그리도 미안한 생각이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상적이 아닌 것에서까지도 신념과 설명으로서 배 여사를 나처럼 변명하고,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처럼 의례적인 인사는 거북스러운 것이었던지 모른다고 자위하는 것입니다.

잡지를 만드느라고 나는 이번 여름 별로 더운 줄 모르고 났습니다. 열중할 수 있다는 것이 이리도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나는 요즈음 모든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잡지의 일로 통해서 그와 연관시켜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상합니다. 적과 동지의 구별에서부터 동정과 경멸의 차원에 이르기까지―말하자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되어버린 것입니다.
정말 여기에는 거짓이나 용서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정 편한 것임을 알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의 막연한 우정, 막연한 믿음―이런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환상이었나를 깨닫습니다.
이미 이것을 알고 살아온 분들은 필경 이런 나의 글을 보면 웃으시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십여 년 같이 살아온 사람들에게 보다 좋게, 자기를 알리지 못한 그런 부끄러움에 비하면 말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主婦生活 1976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