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인쇄
2021년 1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21년 1월호 통권 539호 |2025년 4월 15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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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미 趙承美
출생 : 1947년 서울
학력 : 한양대 무용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건국대 박사학위 취득
경력 : 뉴욕 앨빈에일리댄스시어터, 샌프란시스코 발레학교 연수. 조승미발레단 창단(1980-) 및 단장 역임, 한양대 무용과 교수(1983-2001)
수상 : 제1회 한국민속예술단 선발(1968, 멕시코 미국 일본 공연에 참가), 제5회 「동아무용콩쿠르」 발레부문 은상(1968), 일본 「사이타마국제창작무용콩쿠르」 특별상(1986, 『진실한 나의 영혼』), 제12회 「대한민국무용제」 안무상(1990, 『데니의 하루』), 일본 「동경안무콩쿠르」 특별상(1990, 『나』), 기독교 문화대상 무용부문(1996)


작품활동
안무작
『태』(1980) 『문라이트』(1980) 『운명』(1980) 『레 실피드』(1980) 『아버지여 아버지여』(1980) 『뜻』(1981) 『북소리』(1982) 『나의 간증』(1982) 『성 마태의 수난』(1983) 『꽹과리와 아라베스크』(1983) 『십자가 앞에서』(1984) 『피아노 콘첼토 1번』(1984) 『수난의 빛이여』(1984) 『어서 돌아오오』(1984) 『Moon』(1985) 『무도회의 권유』(1985) 『화이트 크리스마스』(1985) 『그 찬란한』(1985) 『진실한 나의 영혼』(1986)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서』(1986) 『나의 멜로디』(1986) 『주 은혜 놀라와』(1987) 『내일 일은 난 몰라요』(1987) 『육시의 골고다』(1987) 『주 예수보다 귀한 분은 없네』(1987) 『우리가 서로』(1987) 『작품A』(1987) 『에스더』(1987) 「라 죠콘다」(1987, 오페라) 『파키타』(1988, 재구성) 『볼레로』(1988) 『모세의 기적』(1989) 『하나님은 사랑이시다』(1989) 『데니의 하루』(1990) 『나』(1990) 『나의 노래』(1990) 『메모리』(1990) 『파우스트』(1990) 「운명의 힘」(1990, 오페라) 『빛(예술가의 생애)』(1991) 『돈키호테』(1991)「가면무도회」(1991, 오페라) 『영광』(1992) 『한 알의 밀』(1992) 『청산에 살리라』(1992) 『삼손과 데릴라』(1992) 『담배가게 아가씨』(1993) 『우리는』(1993) 『흑인영가』(1993) 『길』(1993) 「메리 위도우」(1993, 오페라) 「아이다」(1993, 오페라) 『백조의 호수』(1994, 재안무) 『엘비스의 연인』(1994) 『영광』(1994) 『007 작전』 (1994) 『그리움』(1994) 『어느 레슨실에서』(1994) 「노래하는 성탄나무」(1994, 오페라)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1995) 「안중근」(1995, 오페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1996) 『아름다운 여인』(1996) 『하늘의 멜로디』(1996) 「라보엠」(1996,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1996, 오페라) 『어메이징 그레이스』(1997) 『참사랑의 주』(1997) 『마이 웨이』(1998) 『주께 가오니』(1998) 외 다수
저술활동
저서
「발레용어사전」(1980) 「사진으로 엮은 발레테크닉」(1982) 「발레- 그 사적인물과 작품해설」(1985) 「무용제작법」(1995)
논문
「성서를 통한 기독교무용에 관한 연구」
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현대무용과 이른바 한국 창작춤(한국전통춤 기법을 현대화시킨 춤)의 예술적 작업이 활발해서 발레의 모습은 그 두 춤세력에 가려 있거나 오늘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가지지 못한 때였다. 또한 발레인들의 발레에 대한 생각도 고답적이어서, 19세기 이래 러시아를 중심으로 지탱되어 온 프티파(마리우스 프티파)류의 클래시시즘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었다. 이바노프·프티파 안무의 『백조의 호수』는 비단 19세기 러시아발레의 걸작이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오늘의’ 한국발레의 모든 것을 담고 비추는 있는 거울로 여겨졌다.
그런데 여기서 한양대 졸업생 및 일부 재학생으로 이뤄진 민간발레단이었던 조승미발레단의 활동은 그런 발레예술의 규범화된 정전을 교묘히 부인하면서 이른바 한국적 창작발레의 모습을 일상적으로 보여주려 애썼다. 80년대 후반 이후 인상주의적 현대음악을 개척한 라벨의 음악을 쓴 『볼레로』 같은 것이 대표적이라 하겠는데, 나는 현대발레 『볼레로』에서 밀도있는 공간활용과 젊은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의 역동적이고 날카로운 움직임의 패턴을, 『나』에서 유연하고 훌륭한 몸매를 갖춘 신애숙을 내세워 농축된 한국적 서정성이 표출되는 것을 목격했다. 작품 『볼레로』가 마치 더운 피를 펌프질해 올리는 것과 같은 남성다움의 열정의 현대발레라고 한다면, 『나』는 한국 여성이 경험하고 체현하는 내면성(혹은 실존)과 외면성(혹은 문화) 사이의 여성적 자아의 서성거림과 길찾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런 독특한 정서와 이미지를 가진 창작발레 『나』가 같은 해 일본 도요다재단이 전폭 후원한 「발레 코리아 페스티벌 90」에서 특별 작품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한편 민간발레단으로 조승미발레단의 보다 결집된 노력과 예술적 야심이 그 이후 표출된 것은 세계초연이라고 할 수 있는, 생상스의 음악을 쓴 『삼손과 데릴라』(1992)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미 이 소재는 많은 대중들에게는 헐리우드 영화로 더 알려져 있지만 그들의 영혼과 재능을 모두 함몰시켜, 즐겨 시작(詩作)으로 예술화시켜 왔던 것이다. 삼손이 데릴라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비의 ‘권능의 열쇠’(그의 머리칼)를 넘겨주면서 개인적 모멸과 파탄과 신앙심의 중대한 위기를 경험케 되는 것은, 비단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매사 어떤 일에 믿음과 신념을 가져야 하는 모든 비종교인들에게도 상징적인 시사성을 갖는다 하겠다.
1992년 「춤의 해」 후반기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되었던 이 작품은 무수한 공연들이 치뤄지는 「춤의 해」의 행사용 공연의 와중에서 많은 관객들의 동원은 이끌어냈지만, 다분히 종교성을 띠고 공연의 마지막에 삼손에 의해 성전의 기둥이 무너지는 장면에 있어 의욕적이었지만, 아쉽게도 큰 비평적 주목을 끌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다.
『삼손과 데릴라』와 같은 대작의 규모를 갖는 발레가 아무리 창작발레지만, 충분한 여건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현재 우리의 예술적·경제적 상황에서는 다소 무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특히 극적(劇的) 구조를 갖는 클래시컬 발레는 종합적 극장예술로서 춤 하나만으로는 도저히 만족될 수 없는 여러 장면의 효과적 뒷받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무대가 횡(橫)으로 넓은 무대공간적 환경에서는 그 점은 더 그렇다. 그러나 조승미발레단은 마치 삼손과 같은 괴력으로 일단 그 공간을 채웠다. 군무의 장면에서 깨끗한 선과 힘의 가능성을 갖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이 무대를 누볐고, 또 필요한 부분에서 스펙터클성과 의상을 통한 화려함이 덧붙여졌다. 따라서 그런 점은 일단 우리 발레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게 만든다.(『삼손과 데릴라』는 소재를 독자적으로 발굴한 것도 그렇다.) 1983년 『꽹과리와 아라베스크』 이후 『볼레로』, 『나』로 이어지는 현대발레 및 창작발레를 향한 노력, 또 그와 더불어 모든 발레인의 영원한 숙제이기도 한 필요한 클래시시즘의 확립을 위한 보다 긴 호흡의 노력 - 그 모두를 조승미발레단은 민간발레단으로 의욕적으로 지난 15년간 해내었다. 90년대 중반에 맞는 일견 ‘발레의 르네상스기’에 있어서 비단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 혹은 여타의 직업발레단이나 직업무용수들의 노력만이 그런 공헌을 이룩해내었다고 할 수 없다. 민간발레단이지만 조승미발레단의 지속적인 공연활동과 신선한 인재배출, 과감한 발레창작화의 도전도 그 속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우리는 평가해야 할 것이다. - 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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