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수상대~한민국이 이긴 거 아세요?

평소 스포츠 경기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였지만 이번 「월드컵」은 우리 한민족 모두에게 그렇듯 흥분과 열광 그 자체였다.
각종 매스컴에서 반만년 역사상 해외에 사는 한민족을 포함해 칠천만 민족이 이렇게 한마음이 되어 “대~한민국!”을 외치며 열광 해 본적이 있었던가 하는 문구를 몇 번이고 되뇌이며 읽었다.
설마 설마 하다가 4강에까지 오르자 어쩌다 만나는 대한민국사람들끼리의 인사가 ‘우리나라 정말 미쳤나봐요’하는 표현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젊은 유학생들은 차에 커다란 태극기를 휘날리며 경적을 울리며 거리를 달리고 나 역시 귀청이 떨어질듯 함께 경적을 울리며 나도 대한민국사람임을 알렸다. 지나가는 행인들도 박수를 쳐주고 택시 기사들도 덩달아 경적을 울려 주었다. 한식당에서 함께 모여 경기를 응원하던 유학생과 교포들도 4강에 오르자 꽹과리를 들고 거리에 나가 자축의 행진을 벌리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스페인을 이기고 4강에 선착한 몇 시간 후 터키 역시 승리해서 4강에 오르자 독일 내에 유난히 많이 거주하는 터키 교포들은 온통 자국기를 차에 달고 환호성과 경적을 울리며 쏟아져 나와 축제의 독일을 만들기도 했다.
거리에서 슈퍼에서 극장에서 누구든 부딪히면 “나 대한민국사람인데 대한민국이 이긴 거 아세요?”
정말 정신 나간 사람처럼 얼마나 떠들고 다녔는지 주변의 사람들이 나만 보면 벌써 엄지손가락을 들며 축하인사를 한다. 그 모든 역사적인 승리가 내 것이라도 된 듯이 말이다.
나는 늘 승자 패자를 정해야 하는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와 별 관련 없는 제 삼국들의 경기를 우연히 접하면 나는 무조건 가난한 나라의 편을 드는 단순한 관객일 뿐이었다.
더구나 결과가 가장 중요시 될 수밖에 없는 스포츠의 세계가, 승자에게 쏟아지는 찬사가 언제고 비난으로 바뀔 수도 있는 그 세계가 내게는 비인간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에서 사람들을 우리 안에 넣고, 죽이고 죽게 하는 경기를 관람하며 그 스릴과 승리감을 즐기던 잔인한 군중의 모습을 담은 영화들을 보면서 나는 심한 혐오감을 느꼈었다.
물론 이 시대의 스포츠 경기들이 그렇게 죽음을 눈앞에 둔 극단적인 양상의 경기는 아닐지라도 실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경기의 후유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승리의 쾌감과 성취감에 날뛰는 사람들 옆에 패배의 절망과 슬픔에 탄식하는 사람들의 대조적인 모습, 어쩌면 그 자체가 인생의 드라마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든다. 축구에 그렇게도 열광적인 독일에서도 그 자체에 부정적이거나 무관심한 사람들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던 나조차도 이렇게 열광적으로 변해 이번 「월드컵」에 거는 열망은 단순히 축구경기의 승리에 보내는 것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듯싶다.
더구나 독일에 살면서 왜 우리는 이들처럼 이렇게 안되는 거지? 왜 못하는 걸까? 하는 정치적 문화적 차원의 부러움과 바램이 많았으면서도 묘하게도 독일과 대한민국이 맞부딪쳐 싸운다 하니 그 어느 때보다도 꼭 이겼으면 하는 갈망이 절실해진다.

반 만년만의 역사에 남을 이번 대한민국의 4강 진출을 두고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이 또 그만큼 화제가 되고 있다. 국내외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는 히딩크의 리더십의 교훈을 보면 사실 너무나 당연한 진리가 아닌가 싶다. 누구나 알고 있고 언제나 들어왔던 진리들이건만 알면서도 우리는 행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위계질서나 서열대로가 아닌 실력위주의 선수 선발의 공정성, 눈앞의 이익보다는 소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한 것, 원칙과 규율을 중시하며 전문지식을 활용한 혁신추구 등 그가 실행에 옮기고 또 이렇게 결실을 맺자 히딩크에 대한 열광은 더욱 빛나고 있는 듯싶다. 그런 진리가 단순히 스포츠 세계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새삼 그런 진리에 목말라하는 우리 사회는 이곳 교포 신문의 논단에 실린 것처럼 우리 사회가 그 만큼 소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놔두지 못한다는 점, 원칙을 무시하고 대충주의에 익숙해 있다는 점, 눈앞의 결과에 급급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다는 부끄러운 자기 고백인 셈이 되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 특유의 가장 큰 병폐인 학연 인맥 위주의 사회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눈앞의 성과만을 바라는 조급주의와 대충주의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몸짓으로 예술을 하고 있는 우리 춤계도 예외는 아닐 것이며 먼저 조심스럽게 나 자신을 돌아본다.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선수들 사이를 짓누르던 위계질서에 놀랐다고 한 것처럼 나 역시도 네덜란드에서 공부를 하며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재정상의 문제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프로그램이지만 학생으로 있으면서 현지의 안무가들의 작품에 참여하고 유럽 순회공연까지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때 학교 설립자이며 교장으로 있던 아트 후게씨가 함께 동행을 했는데 무대 뒤의 잔일들과 학생들의 뒤치닥거리까지 스스럼없이 자처하는 그를 보며 놀랐었다. 그런 일들까지 도맡아 한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함부로 하거나 무시하는 학생은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스페인을 이기고 4강에 오른 그 날 오후 일이 있어 아트의 집에 들르게 되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며 우리가 이겼다고 환호하며 들어서는데 엷은 미소를 띄우며 너까지 축구팬이 되었냐며 자기나라 사람 히딩크가 감독으로 있는 나라 대한민국이 이긴 건 좋지만 「월드컵」 자체에 자신은 아주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거기다 열한 명의 선수들이 열심히 뛰고 잘한거지 어느 나라 전체가 잘하고 잘못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 엄청난 돈을 축구에 쏟고 관중의 관심을 돌리는 정치적 계략이라며…, 사람들 사이에 내셔널리즘을 강하게 심어주어 오히려 나라 사이에 분열을 일으킨다며…. 사람들 사이에 중요한 것은 내셔널리즘보다 자신들의 전통적 정서가 담긴 문화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거라고 했다. 덧붙여 자국기 앞에 애국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희생되었는지 아느냐고 했다.
그 날 이후 내 머리 속에 아트의 말들이 자꾸만 되살아나곤 한다.

그는 오는 팔월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WDA 글로벌 페스티벌」에서 프로듀서를 맡아 일하게 되었다. 항상 유명세와 이름만으로도 대우를 달리 해야 하는 무용단보다는 페스티벌의 컨셉과 내용에 더욱 초점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며 작은 무용단들 하나하나까지도 성의 있게 관찰하고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때로는 직선적이고 지나치게(?) 정직한 성격으로 자신을 외롭게 만들기도 하는 그이지만 내가 여기에서 작품을 할 때마다 든든하게 정신적 후원을 아끼지 않는 동시에 예리한 비판과 충고도 해주는 그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갖게 하는 스승이며 친구이며 예술적 동반자이기도 하다.